이십여 명에 달하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을 자신의 희빈인 진씨의 대가 끊기게 되자
양자로 입적시켰던 것이다. 소형보관이사 몽고족이었으니, 따라서 교국승상 진엄교는
한족이 아니라 몽고족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진씨 가문은 대원제국의 건국에 혁혁한
공로가 있는 가문이었기에 그렇게 배려한 것이었다. 위장한 진씨 가문은 대명제국이
건국되면서도 제거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대명황실이 있는 금릉
한가운데서 살 수 있었다. 위장한 진엄교는 간교한 두뇌와 대원제국의 마지막
후예들의 막강한 지원을 힘입어 황궁에 진출하게 되었다.
나이에 황궁에 입궁한 진엄교는 승승장구하여 승상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진엄교가 몽고족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병권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진엄교는 보위찬탈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사시체크리스트 한족 관료들의 이탈을 막기 위하여 감언이설로 연판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연판장의 필사본이 우연히 예당의 손에 흘러들게 되었던
것이다. 감금되어 있는 이곳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요령성의 유명한 고궁의
지하였다.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내울리 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