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을 때도 예당은 본능적으로 연판장의 행방을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두었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많은 무림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없는 악마 중에 악마들이었다. 미루어 예당은 교국승상이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며, 그의 휘하에 사파무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족이
아니었다. 순제는 이십여 명에 달하는 아들이 있었다. 가정이사 태어난 아들을
자신의 희빈인 진씨의 대가 끊기게 되자 양자로 입적시켰던 것이다. 진씨로
위장한 몽고족이었으니, 따라서 교국승상 진엄교는 한족이 아니라 몽고족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건국에 혁혁한 공로가 있는 가문이었기에 그렇게 배려한
것이었다.
진씨 가문은 대명제국이 건국되면서도 제거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대명황실이 있는 금릉 한가운데서 살 수 있었다. 30평이사비용 두뇌와
대원제국의 마지막 후예들의 막강한 지원을 힘입어 황궁에 진출하게 되었다.
황궁에 입궁한 진엄교는 승승장구하여 승상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황궁의 대소신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진엄교가 몽고족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자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진엄교는
보위찬탈을 결심하게 되었다. 포장이사일반이사 이탈을 막기 위하여 감언이설로
연판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연판장의 필사본이 우연히 예당의 손에 흘러들게
되었던 것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50643
예당이 감금되어 있는 이곳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요령성의 유명한 고궁의
지하였다. 호령하던 시절, 이곳엔 은밀한 별궁이 건립되었으나 세인들 누구도
이곳에 이런 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30평이사비용 그후, 원이 중원을
통치하는 동안 방치되었기에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빠오 包 처럼 둥근
양식을 이루고 있는데, 고궁 가장 안쪽에 있는 송녕전만이 누군가의 손길에
깨끗이 치워져 있는 상태였다. 곳은 말 그대로 완전한 폐허가 되어 있었다.
통치하던 시절, 황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곳 송녕궁에 출입하는 것을
제한하였다. 30평이사비용 년 간이나 인적이 끊겼던 곳이다. 안녕을 기원한다는
뜻의 송녕궁이란 현판의 글씨는 언제부터인지 원녕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중원을 차지한 몽고족은 도읍을 남경으로 정하면서 이곳 송녕궁을 샅샅이 뒤진
적이 있었다. 황실이 난리 중에 빼돌리지 못한 온갖 기진이보가 산더미처럼
있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각종 기관이 있었으며, 그것을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능히 만군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물류창고임대료
송녕궁은 오백여 년 전 강호의 기인이었던 기진자라는 사람이 설계하고 건립한
축조물이었다. 황실은 만일을 대비하여 이곳을 깨끗이 치워 두고 손질을
계속했던 것이다.
원녕궁 심처의 정실에 수염이 허연 노인이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계획하였던 음모를 간파당하자 지체 없이 수하들을 이끌고 이곳 송녕궁으로
왔었다. 30평이사비용 중원을 차지한 몽고족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은밀히
준비해 둔 곳이었다. 짐보관서비스 급습으로 이곳을 변변히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함락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드리옵니다. 이제 육십 정도 된 노인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